자료실
   ※세계 성폭력 추방 기간의 유래
이름     관리자 날짜     2009-07-29 00:00:00 조회     2663

성폭력 추방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Violence Againt Women)은 도미니카 공화국의 세 자매가 독재에 항거하다 살해당한 것을 기념하여 1981년 제정되었다.


세 자매 파트리아(Patria), 미네르바(Minerva), 마리아 테레사(Maria Teresa)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살세도(Salcedo)라는 지방에서 부유한 중류층 가정인 미라발(Mirabal)가의 딸들로 태어났다. 그들이 태어났을 때 도미니카 공화국은 독재자 트루히요(Trujilo)가 통치하고 있었다. 세 자매 중 가운데인 미네르바는 제일 아름답고, 진보적이고, 유일하게 대학을, 그것도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변호가사 되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독재에 항거한 뜨거운 열정으로 인해 도미니카 공화국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미네르바의 미모에 반한 독재자 트루히요는 그녀에게 접근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마라발가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였다. 이에 미네르바는 후에 그녀의 남편이 된 타바레즈(Manolo Tavarez) 변호사와 함께 반독재 그룹 “6월 14일”을 1959년 조직하였다. 6월 14일은 1949년 독재자 트루히요에 대항하여 처음 국민봉기가 일어난 날로서,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산토 도밍고 집결하여 시위하였다. 미네르바는 민족주의자로서 “6월 14일 운동”의 모든 이념이 그녀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세 자매와 그 남편들은 항상 투옥되어 있든지 연금 상태에 처해졌다. 1960년 11월 25일 세 자매는 같은 감옥에 있는 남편들을 면회하기 위하여 짚 차를 타고 가다가 도중에서 정지당하고 끌려 내려져 곤봉으로 맞아 피살되었다. 강간을 하지 말라는 특별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강간은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같이 동행했던 운전수 루피노(Rupino)도 살해되었고, 그들의 시체는 바다에 버려졌다. 그들이 살해된 지역은 도미니카 공화국 북부의 푸에르토 플라타(Puerto Plata)라는 지방이었다. 그 후 “6월 14일 운동”에 가담했던 모든 사람들은 체포되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는 미네르바의 이름을 딴 거리, 단체들이 많으며, 살세도에는 미네르바 박물관이 있어서 그녀의 모든 소유물 - 어릴 때 누었던 요람, 졸업장, 재봉틀, 살해된 날 입었던 옷, 머리카락 등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세 자매의 죽음을 기념하여, 1981년 라틴 아메리카 여성들이 가진 모임에서 11월 25일을 “세계 성폭력 추방의 날”로 정하여 지켜왔다. 그러다가 1991년 성폭력 추방을 위해 활동하는 세계 각국의 여성운동가 23명이 모여 미국 뉴저지주의 여성국제지도력센터(Center for Women`s Global Leadership)에서 “여성, 폭력, 그리고 인권”을 주제로 세미나를 갖고, 11월 25일부터 12월 10일까지 16일간을 “성폭력추방기간(16 Days of Activism Against Violence Against Women)”으로 하여 전 세계에 확산시키기로 하고 이 기간동안 집중적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추방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11월 25일 세계 성폭력 추방의 날을 시발로 하여, 12월 4일은 1989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14명의 여대생이 아무 이유 없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한 남자에 의해서 집단 살해된 날이며, 또한 12월 10일은 세계 인권의 날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동안 세계 각국에서 다양하게 성폭력추방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연대운동으로 1993년 6월 유엔 세계인권대회를 겨냥하여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즉, 유엔 세계인권대회의 모든 토의과정에 여성인권의 문제를 포함시킬 것.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줄 것의 2개항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1991년 세계 성폭력추방주간부터 시작하여, 이미 2001년 3월 일차 분 75,000명의 서명을 유엔사무총장에게 전달하였다. 현재까지 세계100개국에서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며 서명용지는 13개 국어로 번역되었다.